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 정보 부족과 박약한 신념, 자꾸만 뒤로 미루는 버릇은 가난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가 부딪치는 문제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좀 더 배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이는 별로 크지 않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수많은 편의 시설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상수도가 설치된 덕분에 아침마다 식수에 염소를 첨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도 없고, 하수는 저절로 흘러나가므로 그것이 어떻게 배출되는지 알 필요도 없다. 또한 우리는 대부분의 의사가 최선을 다해 진료한다고 믿으며 공중 보건은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보건 의료 제도가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보험회사는 헬스클럽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보상을 해준다. 보상 없이는 고객이 헬스클럽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다음 식사 때 먹을 제품을 어디서 구할지 걱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자제력과 결단력에 의존할 필요가 거의 없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늘 자제력과 결단력에 의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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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공중 보건 문제에 대한 안목을 기르도록 대중을 교육시킬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포함해 만인을 상대로 반드시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 이유와 항생제 의존에서 벗어나야 하는 까닭을 명료하게 설명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정보 그 자체가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 사회적 차원으로 시야를 넓히면 이런 신념과 행동이 존재한다는 것인 교육 시스템이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아이들을 호의적으로 대하며 더 많이, 더 잘 가르쳐 숨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반면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처음부터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않는 아이를 관심 밖으로 밀어내 온갖 모욕을 주다가 결국 도중에 그만두게 만드는 곳이다.

이런 구조는 엄청난 재능의 낭비를 낳는다. 학교를 중퇴하거나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한 아이들 가운데 태반은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희생당한 것이다. 부모가 너무 일찍 포기했거나 교사가 가르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 혹은 학생 자신이 자신감을 잃은 경우다. 이들 중에는 경제학 교수나 대기업 대표가 될 잠재력이 있는 아이도 있지만 결국에는 일용직 노동자나 소매점 주인, 약간 운이 좋은 경우 하급 사무직원이 된다. 그들이 잃어버린 빈자리는 대개 입신의 기회를 제공할 여력이 있는 부모의 평범한 아이들로 채워진다.


🔖 좋은 의도는 좋은 정책을 형성하는 필수조건이지만 좋은 의도만으로 좋은 정책을 만들 수는 없다. 설령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을지라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나쁜 정책이 나올 수 있다.


💬 ”세계 최초로 자연과학의 무작위 대조실험을 경제학에 적용"했다고 되어 있어서 신기함. 경제학에서는 무작위 대조실험을 전혀 안 했었구나..?(경제학 전혀 모름)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따르면 개발경제학계는 주된 흐름이 제도주의라서, 좋은 정책이 아닌 좋은 정치과정이 먼저다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가난과 같은 거대한 문제에는 거대한 해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이 주로 시도한 (무작위 대조실험을 통해 효용을 입증하는) 작은 주변의 변화 류의 프로젝트는 "왜 쓸데없는 일을 하냐"는 말을 듣고 사소한 연구 주제 취급을 많이 받는다고 함. 그래서 마지막 장에서는 정책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장이 되게 좋았다. 저자들은 반드시 큰 변화를 위해 엄청난 제도의 변혁이 선행되어야 할 필요는 없단 입장이다. "정치는 조금씩 개선할 수 있으며 실제로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 언뜻 사소해 보이는 개입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제목 번역은 약간 애매한데,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가난이라는 구조적 현실 하에 처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름의 상황에 맞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책 띠지에는 차세대 노벨경제학상 후보들이라고 써 있는데 19년에 받으셨다고 한다.